[위크&스토리]‘모터쇼의 꽃’ 카모델들의 세계
모터쇼는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찾으면 안 되는 곳 1순위로 꼽힌다. 남자들에게는 모델들과 비교하면 빠질 수밖에 없는 내 여자의 외모를, 여자들에게는 입을 벌린 채 미녀 모델을 쳐다보는 내 남자의 속물근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8등신의 미녀군단이 대거 등장하는 한국 모터쇼의 현실을 빗대는 우스갯소리지만 정색하고 부인하기도 어렵다.미니의 남성모델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 등 소위 프리미엄 브랜드일수록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BMW 관계자는 “시선을 확 끄는 레이싱모델들도 장점은 있지만 패션모델은 보다 고급스러움에 신선함을 더할 수 있다”면서 “모델보다는 차를 보라는 일종의 장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런 추세에 현대·기아차도 합류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김재범(31)씨와 김준영(30)씨 등 대다수 카모델을 정통 패션모델 출신에서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는 레이싱모델이다. 그들만의 장점도 있다. 2년차인 문자경(28)씨는 “레이싱모델 출신들은 전시 차의 특성을 제대로 표현하고 관람객과 소통한다는 면에서 일반 모델과는 차별되는 강점을 가진다”면서 “패션모델을 기용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유행”이라고 잘라 말했다.
야마하 모델 설레나
모두 차를 파는 회사들이지만 브랜드별로 선호하는 모델도 갈린다. BMW와 벤츠는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도회적인 이미지를 중시한다. 패션쇼 런웨이에서 만날 법한 전문 모델을 고르는데 자사 브랜드를 더 품격 있게 보이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단 벤츠는 첫날 프레스데이 행사 때만 모델을 쓰고 일반 관람 때는 차만 배치한다. 같은 스포츠카인 포르쉐는 독일브랜드지만 섹시하면서도 육감적인 모델을 선호한다. 섹시한 차는 모델도 섹시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닛산이나 도요타 등 일본차 메이커들은 보통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작은 얼굴에 눈이 큰 모델을 뽑는다. 이른바 베이글녀(베이비+글래머 합성어)를 찾는데 키가 좀 작은 것은 용인해도 볼륨감이 모자라면 탈락이다. 현대·기이차는 스타급 레이싱 모델을 꺼린다. 오히려 일반인에게 덜 알려진 이들 중에서 세련되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얼굴을 선호한다. 같은 브랜드라도 차종에 따라 모델은 달라진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차 자체가 큰 만큼 상대적으로 키가 더 크고 중성적인 마스크의 모델을, 고급 세단 등 중형차는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모델을, 경차는 작아도 귀엽고 발랄하고 개성 있는 모델을 쓴다.
이들은 과연 얼마나 벌까. 모델들은 수입을 밝히는 걸 불문율로 여긴다. 자존심 문제도 있지만, 자칫 자신의 임금이 굳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특히 몇 년 전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A씨의 수입에 대한 기사가 한 일간지에 나간 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어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수익에 대해서는 극히 민감하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특A급은 일당 100만원 이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상위 1%도 안 되는 극소수다. 한 모델 에이전트 관계자는 “카 모델은 최소 B급 이상을 세운다”면서 “A등급은 일당 70만~100만원, B등급은 40만~6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말했다. 해당 등급은 철저히 지명도에 따라 매겨진다. 또 받는 돈의 30% 정도는 에이전시에 수수료로 떼어 줘야 하는 게 업계 관례다. 미스 대구 출신인 윤아름(27)씨는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일반 직장처럼 고정된 일자리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레이싱걸은 “최근에는 행사를 통해 스타가 되겠다는 욕심에 스스로 일당을 아주 적게 불러서 전시장에 들어오는 신입들이 있어 실제 버는 돈은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고충도 적지 않다. 10~16㎝ 이상 킬힐을 신고 오랜 시간을 서 있어야 하는 직업인지라 근육통은 기본.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는 이도 적지 않다. 모델들의 치마 속이나 특정 부위만을 찍는 관람객을 피해야 하는 것도 고충이다. 시트로엥 모델인 김예하(25)씨는 “이틀에 한 번꼴은 이런 관객이 출몰하는데 모델들끼리 카톡 등으로 인상착의 등을 알리며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서 “처음엔 포즈를 바뀌 방어를 하지만 정 아니다 싶으면 직원이나 경호원에게 살짝 사인을 주는 식으로 대처한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